프롤로그
윤희는 경찰이 들고 온 CCTV 영상을 보며 숨을 삼켰다. 영상 속에서 딸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있었다. 목덜미가 잘리고, 몸이 갈라진 뒤, 도플갱어라는 괴물은 딸의 살점과 피를 흡수했다. 그리고 그 괴물은 딸의 얼굴과 기억을 가진 채 윤희 앞에 있었다.
윤희는 모든 것이 뒤집히는 감각을 느꼈다. 눈앞에서 밥을 먹고 웃으며 "엄마,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그 존재는, 더 이상 자신의 딸이 아니었다.
'이건 내 딸이 아니야. 저건 그냥 괴물일 뿐이야.'
국가에서는 도플갱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피해자가 나온 경우, 보호자가 선택해야 했다. 도플갱어를 제거하려면 요청서를 제출해야 했고, 그 과정은 잔혹했다. 불로 천천히 태워야만 재생 없이 소멸되는데, 그 고통은 딸의 모습으로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윤희는 그 선택을 하지 못한 채 도플갱어를 곁에 두고 있었다.
1. 모진 마음
윤희는 도플갱어인 딸을 멀리하려 애썼다. 딸처럼 웃고, 딸처럼 말을 건네는 그 존재를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증오할 수도 없었다. 그녀의 행동은 모질어졌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거나, 방에 틀어박혀 혼자 울었다. 하지만 딸처럼 행동하는 그 존재는 오히려 윤희에게 다가가려 했다.
"엄마,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더 잘할게."
도플갱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할 때마다, 윤희는 더 차갑게 굴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저건 괴물이야. 딸이 아니야.'
어느 날, 도플갱어는 윤희가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해 밥상을 차렸다. 윤희는 그 순간 무너질 것 같았다. 저 존재가 딸이라 믿고 싶어지는 자신의 마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했다.
'더는 속지 마. 이건 내 딸이 아니야.'
2. "나는 누구야?"
윤희는 결국 진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도플갱어가 너무 딸처럼 행동할수록, 윤희는 그 존재에게 죄책감과 미움을 동시에 느꼈다.
"사실은… 너, 내 딸 아니야."
"뭐?"
"너는 도플갱어야. 넌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야."
도플갱어는 윤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진짜 딸처럼 떨리고 있었다.
"엄마, 무슨 소리야? 나 수진이잖아."
윤희는 경찰이 준 CCTV를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서 딸이 괴물에게 살해당하고 흡수당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도플갱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쓸어내렸다.
"…그럼, 내가 괴물이라는 거야?"
윤희는 고개를 돌렸다. 딸이 남긴 물건과 사진들, 그리고 눈앞의 도플갱어가 교차하며 목이 메어왔다. 도플갱어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정말… 도플갱어라면, 나는 뭐야? 엄마, 나는 누구야?"
3. 마지막 식사
며칠 뒤, 도플갱어는 윤희에게 부탁했다.
"엄마, 나 그만 끝내줘. 괴물로 사는 것도… 엄마 힘들게 하는 것도… 이제 싫어."
"…"
"근데, 마지막으로 밥 한 번만 같이 먹고 싶어. 그거면 충분해."
윤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윤희는 평소와 같은 식탁을 차렸다. 늘 그렇듯 반찬은 단출했고, 국과 밥은 딸이 좋아했던 스타일로 준비했다. 식사는 조용히 진행됐다. 딸이 밥을 먹고 있는 동안 윤희는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딸이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만 들릴 뿐, 대화는 없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다.
식사가 끝난 뒤, 딸은 신발을 신으려 허리를 숙였다. 윤희의 시선은 무심코 딸의 발로 향했다.
왼발에는 스트라이프 무늬 양말, 오른발에는 도트 무늬 양말.
윤희는 눈물이 터졌다.
"넌 도대체 몇 살인데 아직도 양말을 이렇게 신고 다니니…"
그 순간 윤희는 깨달았다. 도플갱어라 해도, 이 아이는 분명 자신의 딸이었다. 괴물일지 몰라도, 모든 습관과 행동은 분명 딸 그 자체였다. 딸이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엄마… 왜 그래?"
윤희는 딸을 꼭 끌어안았다.
"이제 됐어. 넌 내 딸이야. 널 보내지 않아. 절대 안 보내."
4. 짝짝이 양말
딸은 윤희의 품에서 울었다.
"엄마, 진짜 괜찮아? 내가… 이렇게 살아도 돼?"
윤희는 눈물을 닦으며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래, 네가 뭐든 상관없어. 넌 내 딸이야. 그게 다야."
그날 이후, 둘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윤희는 도플갱어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 진실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기로 했다. 딸은 짝짝이 양말을 신고, 윤희는 그런 딸을 보며 웃었다. 그러나 윤희는 알았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윤희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넌 내 딸이야. 괴물이든 뭐든."